한국 문화와 함께 배우는 한국어

한국어에서 “정”은 어떻게 표현되나요? – 번역할 수 없는 감정

WLKorean 2025. 7. 16. 20:14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정이 간다”, “정이 떨어졌다”, “정든 사람” 같은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아무리 사전에서 찾아봐도, 명확하게 뜻이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정(情)’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어 고유의 감정 언어이며, 단어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문화적 감정 복합체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affection’, ‘attachment’, ‘bond’, ‘connection’ 등의 단어로 번역되지만, 그 어떤 표현도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담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정’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쌓이는 무언의 감정, 행동에서 드러나는 애착,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감 없는 마음의 유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친하다는 것을 넘어, 함께했던 시간과 상황, 서로 주고받은 배려나 인내, 때로는 싸움조차도 관계를 깊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정은 가족, 친구, 이웃은 물론, 직장 동료나 상사, 심지어는 잠깐 마주친 이웃 간에도 형성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정’이라는 한국어 감정 표현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고,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어떤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지를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감정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언어로 이해하고, 문화적으로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정’이라는 감정은 왜 번역하기 어려운가?

 ‘정’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공동체 중심의 삶, 유교적 가치관, 가족주의, 이웃 문화, 끈끈한 유대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의미가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는 개인 간의 친밀한 관계를 말할 때 보통 사적인 감정 표현(affection, intimacy)으로 설명되지만, ‘정’은 공공의 정서와 연결되는 감정입니다. 즉, 내가 좋아해서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었던 시간, 서로 나눴던 음식, 공유했던 불편함이 관계를 만들어 그 감정이 ‘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의도하지 않아도 생기고, 이유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감정입니다. 그 자체로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며, 단순한 호감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외국인들은 “정은 뭐고, 사랑은 또 뭐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정 때문에 못 끊겠어”, “정이 떨어졌어” 같은 표현을 통해 결정이나 행동의 기준이 이성보다 감정에 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때의 감정은 이타적이고, 따뜻하며, 동시에 버리기 어려운 연결의 힘을 가집니다.

‘정’이 사용되는 실제 한국어 표현과 뉘앙스

 한국어 일상 회화에서는 ‘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다양한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표현들은 대부분 관계의 깊이나 감정의 지속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화자의 내면 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1) “정이 간다”

 이 표현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낄 때 사용됩니다. 단순히 외모나 말투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 성격, 태도에서 따뜻함이나 진심을 느낄 때 쓰는 말입니다.

예: “그 사람, 별말 안 해도 뭔가 정이 가더라고.”

2) “정이 떨어졌다”

 반대로, 이전에는 정을 느꼈지만 어떤 행동이나 말로 인해 감정이 식었을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강한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 “그 얘기 듣고 나니까 완전히 정 떨어졌어.”

3) “정든 곳을 떠나니 아쉽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장소나 사람과 이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실제 감정은 복잡하지만, ‘정든’이라는 단어 하나로 공간, 사람, 기억에 대한 애착을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예: “정든 학교를 떠난다니 눈물이 나네.”

4) “정 때문에 못 끊는다”

 이 말은 비효율적이거나 불편한 상황이라도,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이유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행동을 멈추지 못할 때 사용합니다. 관계 중심 문화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 “그 가게 사장님도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그냥 정 때문에 계속 가게 돼.”

 

이처럼 ‘정’이라는 단어는 한국인의 인간관계 방식과 감정 처리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합니다.

한국어에서 “정”

‘정’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된다

 한국어에서 감정은 종종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정’이라는 감정은 직접적으로 “나는 당신에게 정이 있어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음식을 나누거나, 사소한 것을 챙겨주거나, 별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국인이 아침을 못 먹고 온 외국인 동료에게 “이거 빵 하나 먹어”라며 건네주는 행동에는 단순한 호의 이상으로 ‘정’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빵 하나에 ‘당신이 챙겨지길 바라는 마음’, ‘작은 정성’, ‘함께 있다는 신호’가 담겨 있는 것이죠. 또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인사하는 주민의 행동, 설날에 고향을 못 가는 친구에게 떡국을 나눠주는 이웃의 마음,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 묵묵히 가방을 들어주는 손길에도 ‘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정’은 언어적 표현이기보다는 문화적 실천이며,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행동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감정을 쌓고, 기억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정’을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외국인 학습자가 ‘정’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의 뜻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 속 작은 행동에 주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정은 설명보다 경험에 기반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정’을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팁입니다:

1) 일상적인 관심 표현을 실천해 보기

 한국에서는 “밥 먹었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같은 말이 단순한 인사를 넘어서 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자주 쓰며 자연스럽게 익혀보세요.

2) 작은 나눔 실천하기

 초콜릿 한 조각, 커피 한 잔을 나누는 행동만으로도 한국 사람들은 정이 생긴다고 느낍니다. 대단한 선물이 아니라, 정성 어린 나눔이 중요합니다.

3)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노력하기

 오랜 기간 연락을 주고받거나, 명절 인사를 잊지 않는 등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정’을 쌓는 핵심입니다.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4) 한국 드라마·영화를 통해 ‘정’을 관찰하기

드라마에서 가족, 친구, 이웃 간의 관계를 보면 ‘정’이 말로 표현되는 방식과 행동의 흐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든 사람”, “정떨어진다” 같은 표현을 주목해 보세요.

 

 한국어에서 ‘정’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인간관계의 본질, 공동체 속에서의 정서적 연결, 그리고 배려와 존중이 섞인 복합적 감정입니다. ‘정’은 때로는 말없이 전해지고, 때로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시간과 함께 쌓이는 감정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이 감정은 외국인 학습자에게는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 더 오래 머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갈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가까워지는 단어가 됩니다. 결국 ‘정’은 공감하고, 나누고, 함께하는 삶의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이며, 이것이 한국어가 지닌 아름다움 중 하나입니다. ‘정’을 안다는 것은 단어 하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당신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정이 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건 당신이 진짜로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